오늘은 왠지 F1 드라이버 아일톤 세나 그가 생각난다

오늘은 왠지 F1 드라이버 아일톤 세나 그가 생각난다

까칠하고 트러블도 많았던 그 이름 아일톤세나

하지만 F1 열정만큼은 남달랐다. 어찌보면 니키라우다랑 성장 배경이 비슷하다. 둘의 공통점은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다.  1960년도 아일톤세나는 브라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4살이 되던 해에 남자의 장난감 고카트를 만들어 선물해줬고 아일톤세나는  이때 부터 운전을 시작했다. 1973년 상파울로 레이싱 카트를 시작으로 79년도 까지 여러번의 우승을 하며 83년 드디어 포뮬러3를 시작으로 9번을 우승하고 F1에 입문한다. 70년대를 돌아보면 제임스 헌트와 니키 라우다가 경합을 벌였고 제임스 헌트는 일찍 은퇴하고 85년도에 니키라우다가 은퇴한다. 이제 아일톤 세나 이야기를 제대로 시작해 볼까?  아일톤 세나가 F1에 입문한뒤 다 죽어가던 톨맨 팀의 TG183B를 몰고 6위까지 기록을 세우며 팀을 일으켜기 시작했고 모나코 경기에서  프랑스인 알랭 프로스트가 맬라렌 머신을 몰고 선두를 잡고 있을때  2위까지 치고 올라간다. 총 77랩중 30랩을 마칠 즈음 비가 계속 내려서 최악의 상황이였고  32랩이 끝날즈음  경기가 중단되었다. 이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기에 1985년 로터스로 이적한다.  포르투칼과 벨지움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했고 1986년  스페인과 미국 디트로이트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따냈다.

그 당시 로터스는 기존에 사용했던 르노 엔진을 버리고 일본 혼다 엔진을 얹었으나 단점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따냈으니  아일톤 세나의 전성기가 시작된 시점이다. 머신의 한계를 느낀 아일톤세나는  1988년 드디어 맥라렌으로 이적하고   여섯시즌을 뛰는 동안 무려 41승을 하고 생애 최초로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이때 짐 클라크가 25년간 가지고 있던 단일 시즌 7승의 기록도 깨지게된다.  1988년은 맥라렌의 독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23세에  톨맨 F1 팀에 입문하고 1985년 ~ 1987년 로터스를 거쳐 1988년 ~ 1993년  맥라렌으로 이적했다. 정말 대단한 실력임을 알 수 있다.  1989년 혼다 3.5리터 V10 엔진을 쓰던  맥라렌에는 프랑스인 알랭 프로스트가 있었는데 아일톤 세나가 프로스트를 넘어서려고 할때 쯤 라이벌 관계로 발전하며 같은 팀이였지만 앙숙으로 지내기 시작했다.

이후 여러번 프로스트와 문제를 일으켰고 결국 프로스트는 페라리로 이적한다. 1990년 시즌 페라리의 프로스트와 폴 포지션을 잡은 세나와의 경주에서  그대로 들이받아 둘 다 모래 밭으로 처박혔고 세나가 챔프가 되었다. 이때 당시 프로스트는 레이스는 스포츠이지 전쟁이 아니라고 아일톤 세나를 비난했다.  1991년 역시 아일톤 세나의 해였다. 혼다에서 개선한 V12 엔진을 얹은 맥라렌 MP4/6 머신을 몰고 4승을 챙기며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3회나 차지하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먹구름이 점점 몰려오기 시작한다.

아일톤 세나의 비극은 1994년 윌리엄즈 르노팀으로 이적했을 때 부터 시작된다. 프로스트와 세나의 운전 스타일은 너무 달랐다. 사고를 피하려고 하는 전통 스포츠 정신을 가진 프로스트와는 달리 아일톤 세나는 우승을 위해서라면 전쟁은 필수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알랭 프로스트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페라리에서 짤리며 세나가 있는 윌리엄즈로 복귀 했지만 93년을 끝으로 은퇴를 한다. 유일한 라이벌이자 적이였던 알랭 프로스트가 은퇴를 했으니 아일톤 세나의 독무대가 지속될거라 예측했는데 이번엔 신인 베네통팀에 있던 슈마허가 나타났다. 슈마허 역시 아일톤 세나 처럼 스포츠가 아닌 전쟁같은 운전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여러번 다툼이 있었으며  1994년 산 마리노 그랑프리에서  슈마허와의 경합 도중 좌코너를 진입하다 컨트롤을 잃고 18m를 미끄러지며 분리대를 받고 사망한다. 그의 나이 34.  이때 윌리엄즈 르노 머신은 상당히 불안정했다고 전해진다. 왕좌를 뺏기지 않기 위한  스트레스 였는지 그 당시 코너 진입속도는 영상을 다시봐도 너무 빠른듯 보여진다.

마이클 슈마허가 특유의 운영을 위주로 경기를 풀었다면, 아일톤 세나는 압도적인 스피드로 모든 상대들을 제압해버렸다. 슈마허는 풀 포지션을 따낸적이 없었다. 혼다의 NSX 개발때 아일톤 세나에게 자문도 구했고 차량 테스트에도 도움을 준거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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